진주를 말하다
사람이 문화가 될 때, 문화예술그룹 온터
1988년부터 현재까지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초심으로 진주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재발견하여 다양한 언어로 재창조하는 종합예술그룹, 온터를 만나보았다.
문화예술그룹 온터 정우열 대표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기치를 품은 문화예술그룹 온터는 진주성을 더 이상 과거의 유산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이 터전이 살아있는 공간임을 몸소 보여준다.
문화 예술의 도시에 온터의 문화가 번진다.

Q. 1988년 ‘울림터’를 시작으로, 1991년 개관한 소극장 ‘우리살림 들소리’에 뿌리를 두고, 2006년부터는 ‘문화예술그룹 온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그룹 온터’라는 이름에는 어떤 정체성이 담겨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울림터’에서 ‘우리살림 들소리’, ‘문화예술그룹 온터’는 뿌리가 같은 한 줄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역할을 나누어 맡게 된 것이지요.
‘온터’의 ‘온’은 ‘모든, 전부, 따뜻함’을, ‘터’는 ‘땅, 장소, 기반’을 뜻하는 순우리말입니다. 그래서 온터는 모든 사람을 품는 따뜻한 공간이자, 전통과 현대, 지역과 세계를 모두 아우르는 창조의 기반을 의미합니다. 또한 진주라는 터전 위에서 온 마음으로 온 세상을 향하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온터는 그 초심을 바탕으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재발견하고 이를 다양한 언어로 재창조해 나가고 있습니다.
Q.
진주의 역사를 기반으로 ‘진주성 수성중군영 교대의식’, 뮤지컬 ‘진주대첩’, 창작 뮤지컬 ‘촉석산성 아리아’, 교방무극 ‘항장무’, ‘진주교방뎐’을 비롯해 취타대, 저글링 보부상, 타악 퍼포먼스 등 다양한 콘텐츠를 창작해오셨습니다.
창작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습니까?
A.
먼저 세대를 이어서 실제로 전승돼 온 것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통도사에 가서 직접 법고를 배워 작품에 녹이고, 창녕 줄다리기 현장을 여러 번 찾아가 대동놀이의 구조를 몸으로 익히고, 상평포농악, 가산오광대, 사천의 판소리, 진주의 교방가요 등을 직접 배우고 촬영하고 기록해 왔습니다. 특히 문헌을 찾아 ‘어디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를 근거로 삼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국악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지요.
또 아무리 고증이 정확해도 재미가 없으면 관객에게 스며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사 콘텐츠를 만들 때 ‘재미있게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를 알게 되는 구조’를 지향합니다.
Q. 공연이나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A.
누구든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공연이라면, 온터가 굳이 그것을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주성, 진주대첩, 교방가요, 상무사 보부상처럼 경남과 진주만의 역사와 말, 장단, 몸짓을 오늘의 언어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가 우리의 출발점입니다.
그 다음으로 떠올리는 것은 관객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고 나면 관객이 무엇을 가지고 돌아갈지, 진주에 대해 하나라도 새롭게 알게 될 것은 무엇인지, 진주라서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될지를요.
경상우병영 본영이었던 진주성의 역사를 무대 위에 되살린 ‘진주성 수성중군영 교대의식’.
2008년 첫 공연 이후 2025년 지금까지 이어지며, 진주를 찾는 이들이 꼭 마주하는 대표 역사관광 콘텐츠가 됐다.
촉석산성아리아
진주대첩 승전을 바탕으로 뮤지컬 〈진주대첩〉을 제작했고, 2013년 창작 뮤지컬 〈촉석산성 아리아〉를 재창작해 매년 개천예술제 대표 공연으로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진주대첩과 진주성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10월 축제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공연.
진주교방뎐
2025년 진주교방의 연행을 기록한 교방가요를 주제로 연희극 〈진주교방뎐〉창작
Q. 그동안 세계적인 축제에서 지역의 문화 예술을 알려오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습니까?
A.
많은 공연이 기억에 남습니다만, 그중에서도 1990년대 후반 일본의 유명한 다이코(큰북) 연주 그룹, 온데코자(鬼太鼓座, Ondekoza)와 함께했던 일본 투어가 떠오릅니다.
일본의 다이코 연주는 단순한 2박 구조를 바탕으로, 큰 동작으로 시각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반면 한국의 타악은 2박, 3박, 5박, 10박, 12박 등 장단의 수가 훨씬 다양하고 변화도 다채롭죠. 그 리듬과 호흡이 일본의 무대 위에서 퍼졌을 때 관객들의 환호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투어를 통해 우리가 가진 리듬이 세계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확신을 얻었고, 동시에 무대 위에서는 몸짓 언어와 노래와 같은 음악적인 것까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일본 야마구치
한중일 문화 페스타
호주 퀸즐랜드주
코리언 컬쳐 페스티벌
독일 베를린 카니발
2019년 대취타 참가, 2023년 우수상 수상
A.
이후 유럽을 비롯한 중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 관객을 겨냥해 창작한 작품이 넌버벌 타악 퍼포먼스 ‘타오놀이(TAONORI)’입니다. 세계 만국어인 ‘북소리’에 경남, 진주만이 가진 지역성을 담아낸 것이지요.
양산 통도사를 찾아가 법고 치는 법을 배우고, 그 배움을 대북 연주로 풀어내며 작품의 뼈대를 세웠습니다. 여기에 길놀이와 장단놀이, 대동놀이를 더해 무대를 완성했습니다.
‘타오놀이(TAONORI)’는 아르코예술극장,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등 서울의 주요 공연장에서 무대에 올랐고, 싱가포르 아트 페스티벌 폐막 공연에는 국내 작품으로는 최초로 단독 초청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진주에서 출발한 작품이 여기까지 오는구나.” 하는 감회가 참으로 컸습니다.
Q. 진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로서 지역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강점은 분명합니다. 진주성과 진주대첩, 교방 문화, 상무사 보부상 등 진주는 말 그대로 역사와 문화의 보고입니다. 저는 진주성을 우리의 유전(油田)이라고 말합니다. 아직 정제되지 않은 역사, 문화의 원유가 끝없이 나오는 터전이지요. 그것을 잘 정제해서 콘텐츠로 만들고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강점입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한때는 지역보다 서울 무대에 집중했던 시기도 있었고, 설득해야 하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제가 선택한 방식은 ‘연구’였습니다. 국악학 박사로서 문헌을 찾아 근거를 세우고, 지역 안에서 지역의 언어로 세계와 통하는 작업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문화예술그룹 온터가 집중하고자 하는 콘텐츠나 새로운 시도가 있습니까?
A.
제가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것은 열등감이 아닌, ‘자존감’입니다. 지역이라서 부족하다가 아니라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감각입니다. 사물놀이, 풍물, 굿, 대동놀이를 통해 우리 몸과 장단 속에 이미 세계 무대와 연결되는 힘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또 굿을 제의가 아니라 종합예술, 대동놀이로 받아들였듯이, 예술이 개인기 뽐내기가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판”이라는 것을 다음 세대가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청소년 한마당’처럼, 우리 문화로 함께 놀면서 배우는 판을 계속 열고 싶습니다.
Q. 앞으로 온터가 집중하고자 하는 콘텐츠나 새로운 시도가 있습니까?
A.
지금까지 굵직한 콘텐츠를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이러한 콘텐츠를 더 깊이 연구하며 시즌제 공연으로 확장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공연 한 편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진주성을 찾는 관광객이 낮에는 역사 해설을 듣고 저녁에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공연을 보고, 다음 날에는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진주형 공연-관광 패키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온터는 문헌 연구와 현장 조사, 영상 기록을 계속 쌓아 가며 공연단체이자 연구소의 역할을 함께해 나갈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무대뿐 아니라, 그 뒤에 쌓이는 기록과 지식도 온터의 중요한 자산이니까요.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A.
제 개인적으로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진주의 역사·문화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콘텐츠로 자리 잡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라난 후배 예술가들이 진주를 떠나지 않고 창작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문화 생태계를 만드는 것, 이것이 온터가, 그리고 제가 끝까지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울림터에서 시작된 여정이 들소리를 거쳐 온터로 왔다면, 이제 남은 시간 동안은 진주에 뿌리내린 세계적인 문화 예술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온 세상을 향해
시간의 힘을 믿으며 걸어온 온터의 목표는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진주의 역사 문화예술을 재발견하여 콘텐츠로 만드는, 작지만 소중한 일들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 그렇게 진주를 대표하는 수준 높은 공연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해, 온 세상을 향해, 정성과 열정을 아끼지 않으며 무대에 서 온 문화예술그룹 온터. 그들이 지역에서 길어 올린 문화유산에 새로움을 접목하는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온터에서, 진주의 문화를 누려 보자.
문화예술그룹 온터
문화예술그룹 온터는 1988년 ‘울림터’를 시작으로, 1991년 개관한 소극장 ‘우리살림 들소리’에 뿌리를 두고 출발한 지역 문화예술단체이다.
들소리는 이후 사단법인 ‘문화마을 들소리’로 문화관광부에 등록 및 인준을 받으며 서울에 진출하였다. 서울로 진출한 들소리는 정우열 공연단장을 중심으로, 한국의 전통성과 대동성을 표현한 넌버벌 타악 퍼포먼스 ‘타오놀이(TAONORI)’를 창작해 세계 20여 개국, 50개 도시에서 초청받아 한국 문화를 알렸다.
국제적인 공연 무대에서 다져진 국제 감각과 다양한 축제 현장에서의 연출 경험을 바탕으로, 정우열 공연단장은 서울 들소리에서 진주 들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이후 지역의 역사 문화 콘텐츠 개발과 활성화를 목표로, 2006년 ‘문화예술그룹 온터’를 재창단하였고, 지역의 공연 언어로 작품을 창작하는 길에 본격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진주성 수성중군영 교대의식, 창작 뮤지컬, 연희극, 취타대, 타악 퍼포먼스 등 진주를 대표하는 공연 레퍼토리를 꾸준히 창작하며 지금도 쉼 없이 달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