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를 맛보다

귀하게 대접하려는 꽃 같은 마음, 진주 조선잡채

산과 바다의 재료를 겨자장에 버무려 완성하는 교방음식의 꽃, 진주 조선잡채를 맛보면 요리는 누군가를 향한 마음의 여정임을 깨닫게 된다.

글 진주교방음식연구원 고문, 경남대학교 외식조리학과 교수 이윤주

사진 심보성

조선시대 진주 교방청, 기생들의 가무와 함께 연회상에 올려지던 진주교방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하나의 예술이었다.
그 화려함은 ‘오색찬란한 꽃밭을 한 상 받는 듯하다’고 전해진다.
그 중심에 바로 조선잡채가 있다.

당면 없이 완성한 옛 잡채,
진주 조선잡채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각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맛’이다. 많은 이들이 ‘잡채’라 하면 으레 당면을 떠올리지만 무더운 여름, 진주에서 즐겼던 잡채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당면 대신 채소와 해산물을 볶아 겨자장에 무쳐 만든 ‘조선잡채’다.
“중국식 잡채는 으레 당면을 섞어 익히고 즙을 치지 않으니
우리의 전통잡채와는 그 모양이 다르다.
- 이성우, 『한국요리문화사』, 1985년
이성우의 『한국요리문화사』에 따르면, 오늘날 익숙한 잡채는 중국식 영향을 받은 형태에 가깝다. 당면(唐麵)은 1910년대 중국에서 들어온 재료로, 중국의 옛 이름인 당나라의 ‘당(唐)’ 자가 붙어 ‘중국에서 온 면’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잡채에 당면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다.

진주의 풍부한 식재료,
산과 바다를 한 그릇에 담다

진주는 고려시대 12목 가운데 하나로, 역사와 문화가 깊은 경남 서부 지역의 중심지였다. 지리산의 산나물과 남해의 해산물이 모여드는 곳인 만큼 산해진미가 풍부했다. 그 풍요로움은 ‘진주 조선잡채’ 한 접시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진주 조선잡채는 쇠고기 사태, 전복, 갑오징어, 새우 같은 귀한 재료와 콩나물, 고사리, 죽순, 버섯 등의 채소로 맛과 식감을 살려낸다. 새콤한 겨자장에 무친 잡채를 얇게 썬 아롱사태에 싸서 한입에 먹으면 그야말로 별미다.

조선시대 궁중이나 교방에서는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반드시 조선잡채를 차려냈다. 별다른 장식을 더하지 않아도 재료 본연의 맛과 빛깔만으로 상을 화려하게 만드는 진주 조선잡채는 교방음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고급 연회 요리다.

따로 볶고,
함께 버무리다

조선잡채에는 갖은 정성이 들어간다. 각각의 재료를 따로 볶아 맛과 식감을 살리고 마지막에는 조화롭게 섞는 것이 중요하다. 채소는 아삭한 식감을 유지해야 하고 해산물은 질기지 않도록 부드럽게 익힌다. 극도의 섬세한 기술로 정성을 다해 만드는 음식인 것이다.

진주 조선잡채 재료


쇠고기 사태 400g, 전복 큰 것 1마리, 갑오징어 1/2마리, 새우 3마리, 콩나물 100g, 도라지 50g, 죽순 50g, 당근 50g, 오이 50g, 고사리 50g, 배 1/6개, 건표고 3개, 청고추 1/2개, 홍고추 1/2개, 밤 2개, 대추 3개, 소금 1큰술, 식용유 4큰술, 조리용 면실


고기 삶는 재료


대파 1/2대, 마늘 3개, 생강 1개, 통후추 10알, 월계수잎 1장


고사리, 표고 양념 재료


간장 1큰술, 설탕 1/2큰술, 다진 파 1작은술, 다진 마늘 1작은술, 후추 약간, 깨소금 약간, 참기름 1작은술

겨자장 재료


겨잣가루 3큰술, 식초 3큰술, 설탕 3큰술, 소금 1작은술, 간장 1/2작은술
TIP. 겨잣가루 대신 연겨자 2큰술(30g)을 사용해도 좋다.
이 경우, 식초 2큰술, 설탕 2큰술, 소금 1/2작은술을 넣어 겨자장을 만든다.

진주 조선잡채 만드는 법


  • 쇠고기 사태는 찬물에 1시간 담가 핏물을 뺀 뒤,
    대파·마늘·생강·통후추·월계수잎을 넣고 1시간 삶아 식힌 후 0.2cm 두께로 얇게 썬다.
  • 겨잣가루 3큰술에 의 뜨거운 육수 1.5큰술을 넣어 개고 발효시킨 뒤,
    식초, 설탕, 소금, 간장을 섞어 겨자장을 만든다.
  • 새우는 내장을 제거해 삶은 뒤, 껍질을 제거하고 포를 떠서 2등분한다.
  • 전복은 솔로 깨끗이 씻은 후 내장과 이빨을 제거하고
    칼집을 넣은 후 사선으로 얇게 편썬다.
  • 갑오징어는 안쪽에 길게 칼집을 넣어 가로 방향으로 길게 편썬다.
  • 콩나물은 거두절미한 다음, 냄비에 잠길 정도로 소금물을 넣고
    4~5분간 뚜껑을 열고 삶은 후 찬물에 식혀 아삭하게 준비한다.
  • 도라지는 채썰어 소금을 넣고 바락바락 주무른 뒤 물에 담가 쓴맛을 제거한다.
  • 죽순은 빗살 모양을 살려 4~5cm 길이로 편썰거나 채썬 뒤, 데쳐서 헹군다.
  • 당근·오이·고사리·표고·배·청홍고추는 4~5cm 길이로 채썬다.
    당근과 오이는 소금을 약간 뿌려둔다.
  • 고사리와 표고버섯은 간장 양념으로 밑간한다.
  • 밤은 모양대로 편썰고, 대추는 돌려 깎아 씨를 빼고 가늘게 채썬다.
  • 팬에 기름을 두르고 콩나물, 도라지, 죽순, 당근, 오이, 청홍고추, 고사리, 표고버섯, 갑오징어, 전복 순으로 각각 볶아준 다음 식힌다.
  • 쇠고기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겨자장에 버무린다.
  • 접시 가장자리에 쇠고기 편육을 돌려 담고, 의 조선잡채를 가운데 올린다.
  • 잡채를 쇠고기 편육에 싸서 먹는다.
채소는 아삭하게, 해산물은 질기지 않게,
고기는 부드럽고 쫄깃하게
그리고 마지막에 이 모든 재료를 모아
매콤하고 새콤달콤한 겨자장으로 버무린다.
각자의 맛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며 하나의 음식이 된다.

시간이 더하는 깊은 맛,
겨자장의 비밀

조선잡채의 화룡점정은 겨자장이다. 겨자는 알싸한 맛으로 입맛을 돋우고, 기름지지 않게 담백함을 살려준다. 특히 겨자의 따뜻한 성질은 채소와 해산물이 어우러진 잡채의 맛을 산뜻하게 잡아주고 여름철 음식의 차가움을 중화한다.
여기에 항균 작용까지 더해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도록 돕는다. 겨자의 알싸한 맛을 내는 성분인 시니그린 덕분이다. 겨울 김장이나 동치미에 갓을 넣으면 쉽게 쉬지 않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조선잡채는 갓 버무렸을 때도 맛있지만, 냉장고에서 하루 정도 숙성하면 더 풍성한 맛이 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맛있어지는 음식,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방음식의 꽃,
연회 요리의 정수

조선잡채는 단순한 별미가 아니다. 계절의 변화를 품은 산과 들, 그리고 바다의 재료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손질하고 따로 볶아내는 과정에는 음식을 대하는 이의 깊은 마음이 담겨 있다.
조선잡채를 한 접시에 담아내는 일, 그 여정을 따라간다면, 누군가를 귀하게 대접하고자 했던 꽃 같은 마음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