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를 명하다

촉석루, 든든한 역사적 배경을 품은 힙한 공간

촉석루만큼 진주의 삶과 문화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가 또 있을까. 든든한 역사적 배경을 등에 지고 오늘날 감각으로 다시 빛나는 곳, 촉석루가 전하는 이야기다.

글 경상국립대학교 한문학과 황의열 명예교수

사진 유근종




남강은 오래전부터 진주 사람들의 삶과 함께 흘러왔다.
고기를 잡고 빨래를 두드리던 생활의 물길이자,
때로는 배를 띄워 계절의 정취를 즐기던 자리였다.
강물은 사람들의 하루를 실어 날랐고
바람은 그 위로 진주의 시간을 천천히 물들였다.
그 강가 언덕, 우뚝한 바위 위에 세월을 품은 누각 하나가 서 있다.
거센 역사의 물살에도 진주 사람들과 함께
한 폭의 풍경으로 남아 있는 곳, 촉석루다.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으로 본 촉석루
    촉석루 전경
    일제강점기
    30.3cm×25.2cm

  • 현재 촉석루 전경

시민들의 큰마음을 모아
다시 세운 촉석루

촉석루는 1241년(고려 고종 28) 처음 건립되었으니 역사가 800년에 가깝다.
그동안 두 차례 다시 지었고 10여 차례 보수하였다.
임진란 때는 좌우로 있던 부속 건물들과 함께 소실되었고,
6.25 전쟁 때는 미군의 폭격을 받아 전소되었다.
지금 보는 것은 1960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 대들보 원목 운반 장면
    중건 당시 교육감 강용성 씨의 손자 강재욱 씨가 기증한 사진(진주문화원 소장)

  • 촉석루 중건 공사
    1959년 11월 20일
    진주고적보존회 상무이사 박세제 씨의 장남 박동진 씨 제공

다시 지을 때는 예전 모습 그대로 재현하기로 다짐하였다.
그래서 원래대로 앞기둥에서 뒷기둥까지 하나의 대들보로 연결하였다.
이런 건축 방식은 이렇게 큰 규모의 건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 긴 대들보감으로 272년생 전나무를 강원도 설악산에서 날라 왔다.
육군 3사단 군인들이 동원되고, 굽은 길을 빠져나오느라 담장 수십 곳을 허물었다.
누마루 아래 기둥은 창원에서 실어 온 돌로 만들어 썩지도 타지도 않게 하였다.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으로 본 촉석루
    촉석루의 옆모습
    일제강점기
    16.4cm×11.9cm

다시 짓는 비용은 7,700만 환,
지금 화폐 가치로는 약 100억 원으로 추산된다.
그중 절반 가까이를 일반인의 모금으로 충당하였다.
6.25 전쟁 끝에 당시 1인당 GNP는 100달러도 안 되었다.
상량식에는 수많은 시민이 모여들었다.
촉석루는 시민의 염원으로 다시 세워진 것이다.
  • 서예가 정현복이 붓글씨 1천500여 자를 그려 넣은 끝에 완성한 ‘촉석루 현판’

남쪽 처마 아래에 걸린 현판 ‘촉석루’ 세 글자.
서예가 정현복(鄭鉉福)은 500번을 써서 이 작품 하나를 건졌다고 한다.
  • 영남에서 제일가는 좋은 경치, ‘영남제일형승(嶺南第一形勝).’

  • 장수가 전투를 지휘하는 남쪽 장대 ‘남장대(南將臺).’

동장대는 없어졌지만
서장대와 북장대, 그리고 이곳 남장대는 남아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으로 본 촉석루 촉석루 시판
    일제강점기
    11.9cm×16.4cm

아름다움과 슬픔이 서린 곳에 올라
시로 노래한 사람들

  • 정문부 시판

  • 임진년 병화가 팔도를 휩쓸 적에
    무고한 재앙 이 성루에 가장 처참하였어라
    굴릴 수 없는 돌이 이내 촉석 이뤘는데
    강은 또한 무슨 맘에 절로 절로 흐르는가
    폐허를 일으킴에 신과 사람 힘 모으고
    허공에 솟아오르니 천지가 함께 떴네
    모름지기 알리라 막부의 경영 솜씨
    장려함이 한 고을을 진압할 뿐 아님을
    _정문부, 「차촉석루운」중에서
시인 묵객들은 다투어 누에 올라 감회를 읊조렸다.
사방에는 시를 적은 편액이 걸렸다.
바람과 달을 노래한 시도 있고
전쟁의 참화를 슬퍼한 시도 있다.
불타기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시판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진주는 내 고향이다. 그런 만큼 나는 그 경치의 아름다움을 잘 안다.
북쪽으로는 비봉산이 봉황새와도 같이 긴 날개를 벌리고 가만히 내려앉는다.
남쪽으로는 망진산이 용이 꿈틀거리듯 에워싸고 있다.
그 사이로 남강이 흐른다.
서쪽과 동쪽의 여러 산도 구불구불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 우뚝한 바위 봉우리가 강의 북쪽 언덕에 가로놓여 있다.
이 봉우리를 따라 성을 쌓았는데 그 형세가 높고 험하다.
옛날에 이 봉우리 꼭대기에는 누각이 있었다.
그곳에 올라가서 굽어보는 아름다움은 이 일대에서는 으뜸이라 할 만했다.
- 하륜, 「봉명루기」,『동문선』권81,
누에서 내려다보는 남강은 가슴을 상쾌하게 해준다.
건너편 망진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한여름에도 땀을 식히기에 충분하다.
지리산에서 시작한 덕천강과 덕유산에서 시작한 경호강이 만나 진양호를 이룬다.
남강댐을 빠져나온 맑은 물은 촉석루 아래를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남강 건너에는 대나무 숲이 있어 은은한 정취를 더한다.
남강이 없었다면 촉석루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해마다 오월이면 들려오는
의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1차 진주성 전투가 벌어진 임진년(1592) 가을,
진주목사 김시민이 이끄는 관군과 여러 의병장이 힘을 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이른바 진주대첩.
이듬해 여름에 벌어진 2차 진주성 전투 때는 결국 성이 함락되었다.
성안에 있던 거의 모든 생명이 죽임을 당했다.
충청병사 황진은 전투 중에 탄환을 맞아 전사하였다.
성이 함락되자 최경회, 김천일, 고종후 등은 남강에 투신하였다.
여러 장수와 의병, 이름 없는 병사들, 그리고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원혼을 달래고 업적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우고 사당을 짓고 제단을 만들었다.
  • 촉석루 보이는 남강

  • 촉석루 위에 올라 있는 삼장사 矗石樓中三壯士
    한 잔 술에 웃으며 장강 물을 가리키네. 一杯笑指長江水
    긴 강물은 도도히 흐르노니 長江之水流滔滔
    물결이 다하지 않는 한 혼은 죽지 않으리 波不渴兮魂不死
의기 논개는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
손이 풀어질세라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웠다.
  • 의암

  • 논개 영정

  • 의기사

촉석루 한편엔 의로운 기녀의 사당 의기사(義妓祠).
촉석루 아래엔 의로운 기녀가 투신한 바위 의암(義巖).
해마다 오월이면 그를 위해 제전을 펼친다.

오늘은 어떤 얼굴을 하고
남강에 모습을 비칠까

가을에는 진주남강유등축제도 열린다.
함께 열리는 10월 축제, 개천예술제는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예술제이다.
남강과 촉석루는 이 축제의 중심이다.
강물 위엔 화려한 장식등이 뜨고, 둔치에는 소망등이 가지런하다.
하늘에선 불꽃놀이와 드론쇼도 펼쳐진다.
  • 진주성_봄

  • 진주성_여름

  • 진주성_가을

  • 진주성_겨울

  • 진주성_겨울

  • 진주성_야경

촉석루는 한두 번 가서는 그 진면목을 다 알 수 없다.
철 따라 다르고 시간 따라 다르다.
날씨 따라 다르고 그날의 기분 따라 다르다.
누구랑 갔느냐, 무슨 생각으로 갔느냐에 따라 다르다.
촉석루는 든든한 역사적 배경을 품은 힙한 공간이다.

진주 사람의 삶과 함께하는 남강.
진주의 혼이 서린 촉석루.
남강에 비친 촉석루를 마음의 액자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