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를 말하다
공중 기예와 땅 기예, 진주 솟대쟁이 놀이
78년 만에 되살아난 진주 솟대쟁이놀이는 공중과 땅을 오가며
진주의 기예와 흥, 민중의 삶을 함께 품어온 전통 연희다. 솟대쟁이패 후예의 정신은
진주솟대쟁이놀이보존회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솟대쟁이놀이보존회 김선옥 회장
1800년대부터 진주를 본거지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친 전문 예인들의 놀이, ‘솟대쟁이 놀이’. 78년간 맥이 끊겼던 이 놀이는 솟대쟁이패 후예들과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오랜 노력 끝에 2014년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났다. 화려한 전성기를 지나,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한 시간을 건너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솟대쟁이놀이보존회 김선옥 회장을 만났다.
놀이판 한가운데 긴 장대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서 양쪽으로 두 가닥씩 줄을 늘어뜨려 그 위에서 여러 재주를 펼친 데서 이름이 붙은 솟대쟁이패는 1800년경부터 진주를 본거지로 전국에서 활동한 전문 예인집단이다. 우리 전통 연희사에서 남사당패와 함께 거론될 만큼 독보적인 존재였지만, 일제강점기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과 서양 문물의 유입, 일본 곡예단의 등장 속에서 1936년 원산 공연을 끝으로 해체되며 오랜 세월 자취를 감췄다.
끊긴 맥을 다시 잇기 위한 노력은 200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진주지부와 전통예술원 ‘마루’, 진주문화연구소 등 지역 문화예술계는 스스로 ‘솟대쟁이의 후예’를 자처하며 복원에 힘써왔고, 그 결실로 진주솟대쟁이놀이보존회가 2014년 1월 발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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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00년대 초반, 모두가 잊고 있던 '솟대쟁이패'에 주목하시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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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3년을 전후해 진주문화연구소를 중심으로 진주삼천포농악보존회, 진주오광대보존회, 전통예술원 마루, 한국민예총 진주지부 등 지역 문화예술단체들이 뜻을 모아 솟대쟁이놀이 복원에 나섰습니다.
당시 故 김수업 이사장께서 저에게 “솟대쟁이놀이를 제대로 복원하지 않으면, 후세에 할아버지를 무슨 면목으로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그때 반드시 제대로 되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故 김수업 이사장님께서는 진주의 문화와 예술을 되살리는 일이야말로 진주 정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 뜻을 이어, 이 전통을 다시 세우는 데 마음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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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줄백이’ 중 농환
(공던지기, 저글링) -
‘솟대타기, 쌍줄백이’ 중
악기 연주하기 -
솟대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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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78년 만에 복원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복원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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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복원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역시 솟대타기와 쌍줄백이었습니다. 이 두 기예는 각종 문헌과 감로탱, 그리고 구전을 통해 전해져 왔기 때문에 감로탱 속 그림과 송순갑 선생의 구전 기록을 토대로 하나씩 재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솟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그 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연희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하나하나 직접 확인하며 풀어가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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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쟁이놀이보존회 초청좌담회
<심우성 선생님께 듣고 묻는 전문예인집단 솟대쟁이패의 기예>, 2014년 -
솟대쟁이놀이보존회 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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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 제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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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송순갑 선생의 솟대타기 연희도와 남사당 줄타기를 참고하여 솟대를 제작했고, 줄타기 보유자인 김대균 선생의 지도와 자문을 받아 연습을 진행했습니다. 이후에는 영화 ‘왕의 남자’에 출연한 남사당 줄타기 전승교육사 권원태 선생의 지도도 받았습니다. 또 경남체육고등학교 체조반 담당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체조 기술도 일부 익히며, 지금의 솟대타기 모습을 조금씩 완성해 나갔습니다. 감로탱에 나타난 장면들을 참고해 추정해 보기도 하고, 회원들이 직접 줄 위에 올라 여러 동작을 시도하며 기술을 늘려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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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솟대쟁이놀이 복원 재현사업
<솟대쟁이놀이, 놀판>,
2014년 -
진주 솟대쟁이놀이 복원 재현사업
<솟대쟁이놀이, 놀판>,
2015년 -
진주 솟대쟁이놀이 복원 재현사업
<솟대쟁이놀이, 놀판>,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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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렇게 2014년 첫해에 몇 가지 기예를 선보일 수 있었고, 이후에도 매년 솟대의 형태와 기예를 조금씩 보완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됐습니다.
다만 줄타기 계열의 기예는 어릴 때부터 익히지 않으면 한계가 분명한 분야입니다. 현재 솟대쟁이놀이 복원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들 대부분이 성인이 된 이후에 시작했기 때문에, 솟대타기와 쌍줄백이의 전승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릅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어린 전승자를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는 경상남도 무형유산 지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면 전수관을 마련해 안정적인 연습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전수지정학교 등을 통해 초등학생 때부터 솟대타기 같은 기예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넓어질 것입니다.
아직 솟대타기의 모든 것을 완전히 재현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앞으로도 매년 조금씩 보완해가며 솟대쟁이놀이를 더욱 발전시키고, 전승 기반도 더 탄탄히 마련해 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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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민속학자들과 고증 작업을 거치면서 새롭게 발견한 진주 솟대쟁이 놀이만의 독보적인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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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진주 솟대쟁이 놀이의 가장 독보적인 특징은 역시 ‘솟대타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전통 줄타기 가운데는 외줄타기만 남아 있는 상황이었는데, 솟대쟁이놀이가 복원되면서 쌍줄을 사용하는 기예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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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줄백이’ 중 물구나무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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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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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솟대타기와 쌍줄백이는 오랫동안 기록으로만 전해져 오던 재주였지만, 복원 과정을 통해 약 80여 년 만에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전통 기예입니다. 복원 자체도 쉽지 않았지만 지금 전국에서 전통성을 갖춘 솟대타기와 쌍줄백이를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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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중 계란 나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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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중 종이로 국수 만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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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기예가 ‘얼른’입니다. ‘얼른’은 전통 연희 속 환술, 전통마술의 한 형태인데, 20세기 초중반까지 유랑예인집단을 통해 전승되다 서양 마술이 들어오면서 맥이 끊겼습니다. 그런 ‘얼른’을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재현해냈다는 점이 매우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2014년 9월 처음 재현했을 때도 많은 분들이 놀라워하며 큰 관심을 보여주셨고, 그만큼 전통연희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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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진주의 정신이 솟대쟁이놀이의 역동성에 어떻게 녹아 있다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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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진주는 예로부터 큰 장이 서던 고을이었습니다. 진주대첩과 형평운동으로 이어지는 강인한 정신과 평등의 가치를 지닌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런 진주의 정신이 솟대쟁이놀이 안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봅니다.
솟대쟁이놀이에서 이어진 진주삼천포농악은 군악의 형식을 통해 전쟁에 나선 군인의 기세와 역동성을 보여주고, 진주오광대는 민중의 해학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성격의 연희를 한데 품은 솟대쟁이놀이는 민중의 시름을 달래고 모두가 함께 어울려 웃고 즐기게 하는 놀이로 자리해 왔습니다.
큰 장터에서 사람들이 함께 솟대쟁이놀이를 보며 삶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흥을 나눴듯이, 오늘날에도
이 놀이는 사람들을 하나로 잇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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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때 잊혔던 전통을 다시 살려 오늘의 무대에 올리고 계신데요. 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솟대쟁이놀이 복원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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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진주 솟대쟁이놀이에는 말 그대로 진주 문화의 정신이 집약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무형유산인 진주삼천포농악도 넓게 보면 솟대쟁이놀이를 이루는 한 종목이고, 진주오광대 역시 그 흐름 안에 있는 중요한 연희입니다. 여기에 죽방울놀이, 버나돌리기, 병신춤, 솟대타기까지 더해지며, 진주 솟대쟁이놀이는 진주 전통문화의 뿌리이자 큰 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전통을 복원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사라진 놀이 하나를 되살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주 문화의 근간을 다시 세우고 그 안에 담긴 정신과 예술성을 오늘의 무대 위에 되돌려 놓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큽니다.
다만 솟대쟁이놀이는 워낙 다양한 종목으로 이루어진 종합연희인 만큼, 각각의 기예를 더 깊이 있고 세밀하게 연마해 나가기 위해서는 꾸준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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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예를 전수받는 젊은 전승자들이나 솟대쟁이놀이보존회 회원들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연희자의 자세’가 있을까요?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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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저는 젊은 전승자들과 보존회 회원들에게 늘 자부심은 가지되,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전통문화 예술은 하면 할수록 끝이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익혔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더 배워야 할 것이 보이고, 알았다고 여기는 순간에도 아직 닿지 못한 깊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 역시 이 길을 걸어온 지 7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스승님께서 보여주셨던 예능을 온전히 다 해내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 완전히 담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고 스스로 다듬어가는 자세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 전통도 오래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