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를 맛보다
귀한 사람을 위한 마음, 진주 유과
진주 유과는 단순한 전통 간식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간직한 ‘맛의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조각 속에 담긴 정성과 시간, 그리고 누군가를 위한 마음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다.
이윤주 진주교방음식연구원원장 및 일신요리학원원장
입안에서 바삭하게 부서지며 사르르 녹는 ‘진주 유과’는 매년 겨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특히 찹쌀 반죽에 콩물을 사용하는 진주만의 독특한 방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명절이나 제사를 앞두고, 진주 사람들은 ‘진주 유과’를 상에 올리기 위해 여전히 전통 유과집을 찾는다.
찹쌀과 콩으로 만든 진주 콩유과
한과는 밀가루, 찹쌀과 같은 곡물과 견과류에 꿀과 기름을 섞어 만드는 전통 과자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에 장인의 손길이 더해지는 만큼, 노란색과 분홍색 등 아름다운 색이 공간에 이채로움을 더해준다. 조상들은 명절이나 제사, 잔치가 있을 때 한과를 사용했으며 새해에는 새뱃돈 대신 한 해를 새롭게 맞이하라는 의미로 덕담과 함께 한과를 나눠주기도 했다.
진주 유과를 맛보는 일은 단순한 ‘먹는 행위’가 아니다. 이는 시간을 되새기고, 사람을 기억하고, 따뜻함을 나누는 일이다. 이 작고도 하얀 유과 한 조각이 누군가에게는 유년의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전하는 선물이다.

진주 유과는 발효 음식이기도 하다. 찹쌀을 깨끗이 씻어 2주간 물에 담가 두고, 골마지가 끼면 여러 번 씻어서 말끔히 헹군 뒤에 가루로 빻아서 체에 내린다. 여기에 콩물(豆水)을 타서 조금씩 넣고 반죽을 해준다.
이 때 콩물이 더해지면 유과에 고소한 맛이 살아나고 식감은 더욱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워진다. 콩을 첨가하는 방식은 유과의 바삭함을 높이는 동시에 영양가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콩물의 양이 지나치게 많으면 반죽이 쉽게 부스러지기 때문에, 적절한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주 유과 만드는 법
- 1.찹쌀을 2주간 불려 발효시킨다.
- 2.2주간 발효시킨 찹쌀을 깨끗이 씻어 곱게 3번 빻는다.
- 3.콩 한 스푼에 물 5컵을 넣고 갈아 콩물을 만든다.
- 4.청주를 두른 찹쌀 반죽을 솥에 찐다.
- 5.열을 식힌 찹쌀 반죽을 꽈리가 일도록 세게 친다.
- 6.찹쌀 반죽이 들러붙지 않게 밀가루를 뿌리게 넓게 편다.
- 7.찹쌀 반죽을 자르고 하루 동안 말린다.
- 8.낮은 온도(40도~60도)에 한 번 담그고 높은 온도(180도)에서 모양을 잡는다.
- 9.쌀조청을 입힌 뒤 쌀튀밥 고물을 묻힌다.

넓은 판 위에 밀가루를 뿌리고 찹쌀 반죽을 펴서 밀대로 밀고, 네모 반득하게 썰어서 말린 후 기름에 튀긴다.
전통적으로 진주에서 유과를 만드는 이들은 반죽한 솥에 튀기지 않고, 먼저 낮은 온도(약 40~60℃)의 기름 솥에서 천천히 산자를 부풀린 뒤, 이후 높은 온도(약 170~180℃)의 기름 솥으로 옮겨 모양을 잡아주는 방식을 사용해왔다.
유과가 완전히 부풀어 오르면 건져서 기름을 뺀 후, 조청과 꿀을 발라 단맛을 입히는 집청(集淸: 과자류를 조청이나 꿀물에 담가 졸이는 것) 과정을 거친다. 유과는 제조 과정에서 산소에 의한 산패가 일어나기 쉬운데, 집청은 이러한 산패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물엿에 비해 끈적임이 적고 단맛이 덜한 조청과 꿀은 물엿의 건강한 대안이 된다. 진주 사람들은 그렇게 정성과 지혜가 깃든 방식으로 오랜 세월 ‘진주 유과’의 맛을 잇고 있다.

‘손가락 유과’, ‘강정’으로 불리는 맛
진주 유과는 누에고치 모양으로 만들어져 손가락 유과로 불리기도 한다. 식감 면에서는 다른 한과에 비해 쫀득쫀득하며 입안에 오래 머무르면서 고유의 맛을 내는 특징이 있다.
맑았다. 우후가 앞 봉우리에서
떠돌이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 1596년 5월 4일, 『난중일기』 중에서
이날 제사에 쓸 중배끼 다섯 말을 꿀에 재었다.
밀봉해 시렁 위에 놓았다.
- 1597년 7월 6일, 『난중일기』중에서
『난중일기』에 기록된 다과 문화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 사이에 역병이 퍼지자, 이순신 장군은 여러 차례 제사를 올리며 군사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진짜배기 볕이 있다’는 뜻의 옛 지명 ‘진양(晉陽)’처럼, 지리적 특성상 꿀이 풍부했던 진주에서 나는 꿀로 만든 유과는 제사상에 오른 귀한 음식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진주시 수곡면 원계마을에 약 열흘간 머물며, 이곳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기도 했다. 전쟁 중에도 병사들의 무사함을 빌며 정성스럽게 제사를 올린 그의 마음은 유과 한 조각에도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진주 유과는 한국 전통 식문화의 지혜와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귀중한 유산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만 찾는 한정된 소비만으로는, 이 소중한 전통을 온전히 지켜내기 어렵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유과를 '과거의 맛'이 아닌 '오늘의 음식'으로 다시 마주하는 일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유과를 꺼내 들고,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정성을 음미할 때, 전통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